모스크바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동부전선 600km지역에서 벌어진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입니다. 1941년 10월1942년 1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소련의 방어 노력은 히틀러가 소련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모스크바를 공격한 것을 좌절시켰습니다. 모스크바는 소련 침공에 있어서 추축군의 주요 군사적, 정치적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태풍 작전으로 명명된 독일 전략공세는 모스크바 북부에서 3, 4기갑군이 칼리닌 전선에 맞서고 동시에 모스크바-레닌그라드 간 철도를 절단해 모스크바 주 남부에서 툴라 남부 서부전선에 맞서 2기갑군이 3, 4기갑군에 맞섰습니다. 제3군은 서쪽에서 모스크바로 진군했습니다. 당초 소련군은 3개 방어대를 구축하고 새로 증비된 예비군을 배치한 뒤 시베리아와 극동군 관구에서 군대를 데려옴으로써 모스크바 주를 전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독일군의 공세가 중단되자 소련의 전략적 반격과 소규모 공격작전은 독일군을 오류르, 뱌즈마, 비테브스크 인근 위치로 몰아 독일군 3개를 포위할 뻔했습니다. 이는 독일에 큰 좌절이며 소련에 대한 독일의 신속한 승리에 대한 그들의 신념의 종언입니다. 공격 실패로 야전원수 발터 폰 브라우치치는 독일군 최고사령관으로 해임되고 히틀러가 후임이 되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방위는 소련의 침략추축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을 기념해 모스크바는 승리의 날 20주년인 1965년 영웅도시 칭호를 받았습니다. 모스크바 국방박물관은 1995년 세워졌습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매년 11월 7일 레드스퀘어에서 10월 혁명퍼레이드를 기념해 1995년 이래 전국적으로 축하받지 못한 10월 혁명 축하행사 대신 군사퍼레이드가 열렸습니다. 이 퍼레이드는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여 군사 영예의 날로 개최됩니다. 퍼레이드에는 모스크바 주둔지와 서부군구의 군대가 참가하며 통상 3000명에 가까운 병사, 사관후보생, 적군 재현자가 참가합니다. 퍼레이드는 모스크바 시장이 주재해, 이벤트중에 스피치를 실시합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에 모스크바 전투의 역사적 재현이 젊은 학생, 자원봉사자, 역사 애호가에 의해 행해집니다. 퍼레이드 지휘는 레닌 묘소 근처의 그랜드스탠드에서 행군 명령을 내리는 군대의 상급 베테랑에 의해 항상 주어집니다. 퍼레이드 사령관이 지휘하는 퀵마치는 소련군 송나라의 곡으로 시작돼 승리의 깃발과 각종 군사전선의 기준 등 전시 상징물을 가진 역사적 색채 경비대가 행진합니다. 퍼레이드 중 음악적 지원은 서부군관구의 각종 군악대, 제154플레이오브라젠스키연대, 러시아 국방부 중앙군악대 등이 참여하는 모스크바 주둔지 미사드밴드에 의해 항상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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